* 빈손으로 다음 약조에 나갔다가는 여인에게 멱살이라도 내줘야 할 판이었다. 작은 실마리라도 건지겠다는 일념으로 입궐은 했지만, 초조한 마음은 사그라지지 않았다. 공식적인 집무가 끝난 후 의금부로 향했다. 관상감 관료가 의금부에 기웃거리면 의심을 살까하여, 고민 끝에 의금부 바깥으로 난 곳간으로 발을 옮겼다. 녹이 슬은 경첩 탓에 끼익 소리를 내며 들어선 ...
* 나의 선택은 여지 없었다. 여인의 팔과 다리가 되어주는 수 밖에. 파면과 혼인보다는 여인의 첩자가 되는 쪽이 훨 이로웠다. 여인과 약조가 있던 날, 창호지 너머 차오르는 햇살에 눈을 떴다. 이부자리를 정리하고 고민 끝에 풀잎색 저고리와 하얀 치마를 꺼내 입었다. 머리를 올리고 그 위에 금빛 나비문양이 달린 비녀를 마지막으로 꽂았다. 가슴 가리개를 하지 ...
* 여인이 뱉은 말 하나하나 충격적이지 아니한 것이 없었다. 그러니까, 지금 딛고 서 있는 땅이 와르르 무너져 내리는 심정이랄까. “어찌하실 것이냐 물었습니다. 생도” “먼저 물어볼 것이 산더미 입니다.” 창백해진 나의 안색에 한발 물러선 여인이 내 이야기에 귀를 기울여 주었다. “진정 좌의정 대감의 여식입니까?” “사실입니다.” “장세출이란 자는 좌의정 ...
* 홧김에 청주를 퍼마신 결과가 이리도 참혹할 줄이야. 내 팔을 붙잡으며 깨워오는 낯선 손길에 눈을 떠보니 난생처음 보는 여자가 내 앞에 앉아, 나를 지그시 바라보고 있었다. "누구십니까?" "기생집이니 응당 기생이겠지요." 이불을 붙잡아 목 끝까지 끌어올렸다. 주위를 둘러보니 객이 머무르는 방 같은 것이 꼭 말로만 듣던 기방 생김새와 비슷하였다. 그제야 ...
* 실랑이 끝에 소반에 둘러앉은 셋 중 먼저 청주를 집어 든 건 나였다. "잔이 없으니 돌아가며 한 모금씩 마셔야 되겠습니다." "입은 대시지 마시지요." 쏙 끼어들어 얄밉게 말을 뱉는 여인을 흘겨보았다. 호리병 손잡이를 잡아 멀찍이 얼굴과 떨어트린 채 입에 청주를 부었다. 작은 불쏘시개가 목을 타고 넘어가 뱃 속 구석구석을 쑤시는 듯한 화한 감각에 인상을..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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